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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ve

'조지 플로이드'는 영웅이고, 데릭 쇼빈은 정말 살인자일까?

by ifnotnow82 2021. 4. 23.

BLM 시위와 흑인인권문제에 시발점이 되었던 '조지 플로이드'사건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요즘 미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세상이 왜 이렇게 중국처럼 변해가는 것일까? 민주주의의 모순과 맹점으로 인한 부작용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씁쓸하기만 하다. 

 

 

아래의 글은 홍지수 번역작가님의 페이스북 글을 퍼온 것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법'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되었다고 생각하여 발췌해 보았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배경 
미니애폴리스 경찰 데렉 쇼빈은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땅바닥에 강제로 엎드리게 하고 뒷목부분을 다리로 눌렀고 조지 플로이드는 사망했다. 부검 결과 조지 플로이드의 시신에서는 온갖 마약과 약물이 검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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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워터즈 때문에 쇼빈의 유죄판결을 뒤집을지도 모른다>

-앨런 더쇼위츠-

미네소타 항소법원은 (유죄판결을 번복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연방 대법원은 번복할지도 모른다. 과거에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이 협박을 받아서 유죄판결이 번복된 사례들이 있다.

맥신 워터즈 하원의원은 20세기 초 남부지역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썼던 수법을 썼다. 1920년대에 남부에서는 인종적으로 민감한 재판이 열리면 백인 유권자들이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치인들은 흑인 피고가 무죄판결이 나거나 백인 피고가 유죄판결이 나면 폭력 사태가 발생하리라고 묵시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대법원을 비롯한 연방법원들은 이러한 협박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번복한 사례들이 있다.

쇼빈 재판의 판사는 재판 내내 배심원들을 격리(sequester, 재판이 열리는 동안 배심원들이 여론의 영향을 받거나 협박을 받지 않도록 격리시키는 조치) 시키지 않은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쇼빈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예전에 살던 집에 피가 뿌려졌다. 쇼빈의 변호인들은 협박을 받았다. 폭력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배심원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지금은 1920년대 남부는 아니지만 “정체성 정치”가 만연한 21세기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재판의 증거는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과실치사(manslaughter)임을 뒷받침하기는 하나, 살해하려는 의도를 품고 저지른 고살(murder)은 아니다. 워터즈 의원과 그 추종자들은 고살 말고는 그 어떤 판결도 용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사실과 법이 그러한 결과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워터즈는 중립적인 정의 실현에 관심이 없다. 그녀와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부당하다고 보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원한다.

데렉 쇼빈의 유죄판결은 인종적으로 첨예하게 분열된 이 사건의 마무리가 아닐지 모른다. 연방 대법원이 궁극적으로 이 유죄판결을 확정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지 모른다.

맥신 워터즈 하원의원은 데렉 쇼빈의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이 아직 격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쇼빈이 고살(murder)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 않으면 가두시위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는 그 어떤 판결이 내려져도 워터즈가 한 발언 때문에 항소법원에서 뒤집힐지 모른다고 정확히 짚었다.

판사는 워터즈의 발언을 강력히 비판했지만 피고 측의 재판 무효(mistrial) 신청을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다. 판사가 재판무효 신청을 받아들였다면 폭동으로 이어졌을 게 거의 확실시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폭력사태를 워터즈 의원이 아니라 판사 탓을 하게 되었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판사는 자기가 했어야 할 일(재판무효를 선언하고 배심원단을 새로 구성하고 배심원들이 여론과 협박에 오염되지 않도록 격리조치하고 새로 재판을 하는 일)을 항소법원에 떠넘겼다.

정의는 흑백논리처럼 분명하지 않다. 양측이 제시한 증거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대조해보고 상식을 동원해야 한다. 배심원들이 자기 머리 위에 (맥신 워터즈가 칼집에서 빼어 든) 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역량을 발휘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는 법치가 아니다. 군중의 격정이다.

인종 간의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사건들에서는 배심원들을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협박을 받고 이에 영향을 받아 평결을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쇼빈의 사건에서는 맥신 워터즈와 그 일당들이 협박과 강요를 했기 때문에 배심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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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상황들을 보면, 미국의 법치는 무너지고 있다. 중국처럼 떼법이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외치고, 생떼를 쓰면 그것을 국가와 정부가 마지못해 수용하는 그런 불합리한 떼법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치며 죽은것처럼, 법은 그것이 완벽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예외상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악법과 나쁜 상황이후에 그것이 얼마만큼 재발방지가 이루어지는가이다. 이 부분은 트릭키한 부분인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법과 시스템은 이미 너무 복잡해져있다. 각 기관이 서로 견제를 하기 위해 오랜기간 그렇게 발전된 것인데, 그것이 오히려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그러한 절차를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더 큰 부작용이 나올 수 도있다. 

 

 

아무튼 나는 '조지 플로이드'를 성인으로까지 생각하고 추대하는 미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다소 불공정하게 죽었지만 그 뿐이다. 그가 체포된 초기에 미공개되었던 영상을 보면, 그는 경찰의 말에 불응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과자였고, 당시 약물까지 검출된 상황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사망하게 되어, 그것이 데릭 쇼빈이라는 경관의 유죄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공정하게 살펴보아야한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말이다. 데릭 쇼빈을 옹호하자는게 아니다. 그는 잘못했다. 분명 과잉진압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지 플로이드가 마치 아무것도 안한 순진한 시민인척하는 것 또한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볼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단지 한 쪽(BLM)의 의견에만 치우쳐 역사에 남는것이 안타깝기만하다. 그리고 미국의 법치주의의 현 상황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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